풀섶에서 찾은 귀
시애틀의 가을비는 며칠째 창문을 두드렸다. 길게 이어지는 빗줄기는 유리창 위를 따라 선을 그리며 흘러내리다, 어느새 투명한 창살로 변해 나를 집 안에 가두었다. 창밖의 단풍잎은 바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떨어져 마당에 수북이 쌓였다. 벽난로 속 이글거리는 장작불은 나의 생각을 태우고, 불꽃 사이로 흐르는 시간은 멍하니 멈춰 있는 듯했다.
그때, ‘까톡!’ 전자음 하나가 불과 어둠의 경계를 흔들었다. 잠시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나를 누군가 불러내듯 깨웠다. “내일은 비가 그친데요. 송이버섯 따러 갈래요?” 지인이 보낸 짧은 한 줄의 메시지, 마음은 이미 숲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 산의 윤곽이 여명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Gifford Pinchot National Forest, 기포드 핀쇼 국유림. 골짜기마다 가을의 숨결이 황홀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화려함에 주눅 든 소나무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무심히 하늘만 바라보는 듯했다.
심지어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송이가 자라는 비밀의 장소’에 이르자, 우리는 분주히 움직였다. AllTrails 앱을 켜고, 호루라기 신호를 정했다. 곰이 싫어한다는 쇠소리 나는 방울을 배낭에 달고, 서로 네 미터쯤 간격을 두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그 거리는 안전을 위한 간격이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기 위한 예의의 폭이었다.
숲은 어두운 영화관 같았다. 수직으로 솟은 소나무들이 기둥이 되고, 그 사이로 흘러드는 빛은 커튼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발아래 솔잎은 두꺼운 카펫처럼 푹신했고, 걸음마다 솔향이 피어올랐다. 그 속을 걷는 우리는 잠시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 같았다. 마침내 한 웅큼의 솔잎 무더기 아래에서 작은 봉분처럼 흙을 밀어 올린 송이를 발견 했을 때, 기쁨으로 환호를 질렀다. 쌓인 솔잎 사이로 고개를 내민 상아빛 송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를 반겨주는 듯했다. 소나무, 햇빛, 비, 바람, 그리고 우리 — 그 모든 존재가 하나의 숨으로 이어져 있었다.
숲속 깊은 곳에서 막대기를 든 키가 작은 남자와 큰 바구니를 든 여자를 만났다. 그는 막대기로 땅을 ‘툭, 툭’ 두드리고 있었다. “버섯을 채취하는데 왜 막대기가 필요하죠?” 하고 물어 보았다.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딱딱한 땅은 ‘틱틱’, 송이가 숨어 있는 자리는 ‘통통’ 소리가 나지요. ”그 울림은 땅이 내는 호흡이자, 아직 피어나지 않은 생명의 신호였디.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면, 곧고 단단한 기둥이 드러난다. 갓이 완전히 펴지지 않고 단단하게 오므라든 ‘A급 송이는 아우라가 뿜어 나오는 듯 했다. 갓과 대가 만나는 경계에는 하얀 막이 여전히 붙어 있어, 마치 방금 봉인에서 풀려 난 듯한 순결함을 자랑한다. 눈에 보이는 버섯만 찾는 우리에게 그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버섯의 신’ 같았다.
문득 ‘송이(松茸)’라는 한자가 떠올랐다. ‘松’은 소나무, ‘茸’는 버섯이다. 그런데 ‘茸’ 자를 자세히 보면 **‘풀 초(艹)’ 아래에 ‘귀 이(耳)’**가 쓰여 있다. 풀 아래의 소리를 귀로 듣는 생명, 그것이 바로 버섯이었다. 아마도 고대의 채취자들도 오늘처럼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풀 아래 숨어 있는 생명의 숨결을 귀로 들었을 것이다. 기원전 1500년경 만들어졌다는 상형문자 ‘송이’에는 이미 자연의 언어를 듣는 귀가 들어 있었다. 풀 아래에서 솟아나는 생명을 귀로 들었다는 고대인들의 예리한 자연 관찰은 경이로울 따름이다.
버섯 채취자는 수많은 날의 인내 끝에 땅의 숨결과 호흡을 맞춘다. 그가 듣는 것은 단순한 울림이 아니라 생명의 떨림이다. 그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목소리다. 어디선가 어린왕자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 해.”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 버섯 채취자는 마음의 귀를 열고 땅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송이를 찾는 일은,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알아가는 일과도 닮아있다. 마음으로 보기 위한 인내와 노력, 그것이 이해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는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상대의 마음을 들으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종종 자신의 생각에 갇혀, 들을 수 있으면서도 듣지 못한다.
다음 송이 산행에는 금속탐지기 대신 ‘송이 탐지기’를 단 막대기가 필요하겠다며 웃었다. 웃음은 산바람에 흩어지고, 우리는 숲이 허락한 만큼의 귀한 송이를 품고 산을 내려왔다. 물이 내려오는 계곡에서 송이를 넣고 끓인 라면은 숲이 내어준 아주 따뜻한 환대였다..
사람들은 송이를 단순히 귀한 식재료라 여기지만, 그날 내가 느낀 귀함은 ‘깨달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법 — 눈 대신 귀로, 마음의 귀로 듣는 법. 깊은 숲 속의 한 버섯 채취자를 통해 자연이 가르쳐준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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