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 수필

마지막 안부 전화

김민정

띠리링 링링~ 띠리링 링링, 신호음만 빈 공간을 맴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여보세요, 아, 민정이가?” 금 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던 엄마의 반갑게 다가오던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침묵만이 선을 타고 흘러나올 뿐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세 달쯤 지났을 때였다. 퇴근길 도로 위에서 느닷없이 그리움 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울다가, 나도 모르게 익숙한 번호 를 눌렀다. 엄마집을 정리하던 동생이 차마 엄마의 전화개통을 해지하지 못했다는 것 을 깨달았을 때 가슴이 아려왔다. 전화선마저 끊어버리면 이 세상에 엄마가 살았었다 는 마지막 흔적마저 영영 지워져 버릴 것 같았으리라. 그 번호가 남아있는 한, 신호음 이 울리는 동안만큼은 엄마가 여전히 그곳에 계시다고 믿고 싶었던 동생의 애달픈 마 음이었을 것이다. 끊어진 줄 알았던 우리의 탯줄이, 수화기 너머의 무음 속에서 여전 히 전화선이 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거의 매일 퇴근길마다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대화에는 늘 정 해진 순서가 있었다. 하루 사이 별일이 없었음에도 엄마는 언제나 나의 안부를 가장 먼저 챙겼다. 이어 하나뿐인 외아들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고, 큰딸에게는 “이제 여 행은 그만하고 시집갈 생각은 안 하나?” 막내가 운전학원에 다닌다 하면 “그 꼬맹이 가 뭘 안다고, 조심시키래이” 하며 걱정을 얹으셨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나의 단조로운 일상이나, 시골에서 한적하게 지내는 엄마의 하루 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통화는 끝이 없었다. 내가 집에 도착할 즈음 통 화의 끝은 늘 작은 실랑이로 마무리되곤 했다. 끊긴 전화선 너머로 밀려올 정적과 허 전함을 상대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하나, 둘, 셋을 세 고 동시에 전화를 내려놓기로 합의하곤 했다. 내일 다시 걸 통화라는 걸 알면서도, 그 렇게 전화기에 의지해 몇천 마일의 아득한 거리와 몇광년 같은 시공간을 메우려 애썼 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애틋했던 것은 아니다. 자식들을 키우느라 생업에 매달리던 시절, 엄마의 모습은 차라리 무뚝뚝함에 가까웠다. 말이 없던 엄마는 당신 키보다 길 쭉한 도마 앞에 서거나 연탄 아궁이 네 개를 부지런히 오가며 음식을 만드셨다. 아궁 이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속에서 엄마의 얼굴엔 땀방울이 끊임없이 맺혔다.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 온 힘을 쏟아내던, 엄마의 가장 치열했던 날들이었다. 어릴 적 나는 세 살 터울 동생을 데리고 마을 뒷산에 있는 향교의 큰 바위에 누워 숙제 를 하곤 했다. 해 질 녘 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여전히 묵묵히 말씀 하시곤 했다. “배고프제?” 그 짧은 말이 그 시절 엄마가 가진 압축된 사랑의 표현이 었다. 언젠가 안부 전화를 하다가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우리가 어릴 때 엄마는 참 말이 없었어. 잔소리 들은 기억도 별로 없고.”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서너 시간 자는 것도 감지덕지하며 살았으니까. 그 리고 잔소리할 게 뭐 있었겠나. 에미 고생하는 거 보고 자식들이 어떻게든 짐이 안 되 려고 애쓰는 게 다 보였는데. 미안해서 말도 선뜻 못 나왔지.”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엄마가 덧붙이셨다. “고맙다. 내가 수고한 것보다 너희가 더 애썼다.” 엄마는 '엄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자식을 세상에 태 어나게 했으면 부족함 없이 키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부채감이었다. 타국에 건너와 아이들을 키우며 늘 서툰 엄마로 살았던 나 역시, 이제야 비로소 그 마음을 이 해한다. 나 역시 내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안고 사는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식의 인연이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삶을 서로 보듬으며 견뎌내는 운명적 인 수용일지도 모른다. 2016년 가을, 한국에서 걸려온 언니의 전화는 모든 감각을 멈추게 했었다. 서둘러 달려간 한국에서 마주했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떠나신 날 이 후로 내 전화기 사진첩의 엄마 모습은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퇴근길 갓길 에 차를 세우고 들었던 그 무음의 신호음은, 역설적으로 엄마가 여전히 그곳에 계심을 알려주는 듯했다. 훗날 형제들이 모였을 때 그 일을 털어놓자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 다. 그들 역시 차마 끊지 못한 엄마의 빈방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고 했다. 비록 대답 없는 신호음으로 끝날지라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그 번호를 누를 것이다. 엄마가 남겨준 따뜻한 사랑과 노고는 자식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에. 매일같이 수화기를 들고, 끊어진 줄 알았던 옛 탯줄을 다시 쥐어보며, 회백색 머리칼 의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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