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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에서

김지숙 시인

나는 너무 일찍 태어났고 너는 너무 늦게 태어났다 그리고 빨리 늙어버렸다 읽어보지 않고도 이미 읽은 것 같은 책들처럼 어디로든 나를 데려다 줄 거라는 믿음 역시 언젠가 우리는 결국 서로를 잃게 될 거라는 첫 예감만큼 단단하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구름은 흐르고, 나무는 자라고, 돌은 둥글어고, 어둡고 아름다운 언어로 거짓말을 하고 꼭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던 말은 누구도 하지 않고 그런 저녁의 끝 무렵에서는 나의 감정들이 별스러울 것 없다 잊고 살겠다 싶어진다 넓고 깊은 강이 조금씩 물결을 뒤채며 흘러갔다 어디서 번져 나오는 건지 스스로 서늘해지는 어둠도 지나 언젠가는 백발이 성성한 채 낡은 의자에 앉아 구부정한 그림자 하나가 빈 벽을 건너가는 걸 보게 될 나는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을이 번져가는 강 건너 나무들이 잠시 한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전망대 유리창에 빗방울이 흘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조금씩 닮아 있었다 우리는 제각각의 고통을 완성하기 위해 타워를 내려왔다 시작된 일은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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