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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남은 시간

김 명주

어둠이 오는 방과 후의 운동장은 외로움의 넓이보다 넓다 지나가는 길에 가끔은 깜박거리는 불, 아직 꺼지지 않은 교실이 있다 교문은 문을 닫고 벌써 저녁을 준비중이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한다 거리에서 현기증이 난다 딸꾹질을 시작한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 골목이 더 구부러진다 고속버스 창문으로 아직 지나치지 않은 침묵이 겹쳐진다 아버지의 날카로운 단어가 두터워진다 눈으로 가라앉는 기억 침전물은 눌러앉지 않고 빈틈없는 비누 거품이 된다 살구를 깨물었다 웃통 벗은 살구의 신 핏물이 흘렀다 씹기도 전에 입안 가득 유년의 여름을 넘긴다 주먹부터 날아온 시간의 비린내는 쏙 빠진 살구씨에서 몇십 년을 뱉는다 어둠 속에서 집으로 가지 못한다 잠들지 않은 걸음 마루에 붙인다 재갈 물린 손을 조심스러워한다 문에 귀를 달고 형광등은 눈을 감는다 쓰고 남은 아직 어둠이 눕는다 넓고 넓은 시간이 잠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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